가. 차는 최초 약용으로 출현함.
-고대 문헌 <신농본초>에서"신농씨가 약초를 연구하던 중 하루는 72가지 독에 중독 되었는데, 차를 얻어 해독되었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 차는 약용으로 사용되었다.
나.生煮羹飮 (생자갱음) : 차 잎을 끓여 마시는 방법
- 야채탕과 비슷하다. 국물을 마시고 차 잎을 먹는다. 가공을 하지 않은 신선한 잎을 사용하였다.
현재까지 그 방법이 이용되고 있는데, 광동, 광서, 운남, 호남 등지의 打油茶 (타유차: 쌀, 돼지기름, 땅콩,
깨,산초,설탕,소금 등을 넣어 만든 차) 擂茶(뢰차 : 차잎에 생강, 쌀을 섞은 차)가 이에 속한다.
다. 蒸靑塑型 (증정소형) 의 기술
- 삼국시대 위나라 장집 (230년 전후)의 <광아>에 “차잎을 병 모양으로 만들고, 烘干 (홍간)불에 말리는 것 ,晒干(쇄간)햇빛에 말리는 것” 인용시 가루 내어 물에 우려 조미료를 첨가해 마신다. 이것이 가공제조의 맹아 이다.
라. 당조의 증청 (생차를 찌는)기술
- 당대 차잎을 쪄서 병차를 만드는 방법이 점차 완전해 졌다.
육우의 < 차경 > 제 3장 차 의 제조 편에서 “맑은 날에 차 잎을 따서 찌고 찧고 두드리고 불에 쪼이고 꿰고 밀봉 하고 말린다 “ 또 ”차에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 병면에 가지런한 거친 주름이 있는 것이 있고 구부러진 주름모양이 있고, 매끄러운 고랑모양이 있다. 이것은 두꺼운 모양이고 여리고, 윤택한 색을 가진 양질의 차다. "라고 설명했다.
- 당나라 중기는 차 문화 형성의 시발점이 되는 시기다. 차 문화에 대한 토론에 유교, 도교, 불교를 음차에 인용하면서 초음으로 다도 정신을 이룩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많은 서적과 시도 나왔다. 차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맑게 하고 정기를 생성하고, 갈증을 해소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사찰에서는 음차를 숭상하고 사찰 주위에 차나무를 심고 차 예절을 만들고 차당을 짓고 담당자를 선정하는 등 전문적으로 차에 관련된 활동을 하였다. 당나라 때 형성된 차 문화를 분류해 보면 궁중다도, 사찰다례 문인다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역사이래로 많은 차 문화가 들은 차 문화의 각 방면에 대해 끊임없는 시도와 연구를 해 왔다. <차경> 이 나오면서 차 문화가 정립되었으므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마. 송조의 点茶
- 마시는 차 잎을 미세한 분말로 갈아서 전용 찻잔에 차잎을 넣고 차 잎에 7할에 물을 타서 찻물은 마시고 차찌꺼기는 남긴다. 송조의 송휘종의 <대관차론>에는 “해마다 건계의 차를 납하게 하니, 용단풍병의 명성은 천하에서 으뜸이었다.”라고 말한다. 용단풍병의 제조 공예는 송조 조여려의 <북원별록>을 근거해서 살펴보면 ,차 찌기, 짜기, 갈기, 만들기, 시든 잎 가려내기, 말리기 등의 절차로 진행된다. 즉, 차 잎을 따서 먼저 물에 담그고, 차 잎을 균일 하게 고른 다음 쪄서 찬물로 씻어 내고 , 그 다음 물을 짜내고 차즙을 짜낸 후 질 그릇에 담아 곱게 간 다음 다시 용봉 무늬에 거푸집 간 것을 넣고 눌러 병차를 만들고 불에 쬐어 말린다.
바. 명조의 泡茶
-명나라 황제 주원장은 차 잎을 직접 나무에서 따서 직접 추려 마시게 하였다.이는 녹차 산업을 발전 시키게 했다. 녹차를 기초로 하여 홍차, 황차, 백차, 흑차가 만들어 졌으며 ,청조 중기에 나온 오룡차(청차) 이다.
이상 색깔로 구별하는 것이 차 잎의 6대 분류법이다.
사. 여섯 종류 차의 기초 상 출현한 네 종류의 가공 차
-화차, 긴압차, 분차 말차,차가 아닌 차 첨가 맛차